보편사의 어떤 문제를 연구하든, 근대 유럽문명의 산물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자문하게 만든다.

즉 (우리가 보통 그렇게 생각하듯이) '보편적'의의와 가치를 지닌 발전선상에 놓여있는 듯한 문화적 현상이

서구문명에서, 그리고 오직 서구문명에서만 나타난 사실은 어떤 일련의 환경들에 귀속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오직 서구에만 우리가 오늘날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발전단계에 오른 과학이 존재한다.

그러나 경험적 지식, 우주와 삶의 문제에 대한 반성, 가장 심오한 종류의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지혜 등은

서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이슬람과 다른 인도의 몇몇 종파에서는 단지 단편적 신학만이 존재했기 때문에

앞에 말한 종류의 지혜가 체계적 신학의 만개한 발전에 이른 것은 헬레니즘 영향 아래서 기독교만 국한되지만

간단히 말해서 매우 세련된 지식과 관찰은 다른 곳, 특히 인도, 중국, 바빌론, 이집트 등에도 존재했다.

...........

아마 과학사 강의에서 학습했던 내용으로 추측된다.

문득 공부했던 공책들을 정리하다가 기록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인 것 같아 적어보았다.

내가 직접 적은 글은 아닌 듯 하며, 어디서인가 발췌한 듯 하다. 정확한 출처는 모른다.

고민해볼 법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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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어디서 나왔는지 찾았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앞 부분에서 말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나니... 또, 이 뒷 내용을 읽어보니

이게 서구중심적 시야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양의 지식과 관찰 보다 서구의 합리주의적, 과학적 관점이 더 진보한 단계라는 것을 말하는 내용이었다.

위에 적었던 내용과 완전히 상반된 내용을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무지와 몰이해가 오해와 오류를 낳았던 것이었다.

다시 한번 느낀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며, 경험한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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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 생각했던 그 사람이
이젠 우연이 되고.
집착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 그 사람을
오랜기간 소망하며 바라보았고
특별한 관계 였을 때는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진심을 다해 사랑했었고.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고자
진실된 마음을 감추고
마주하기를 피하고 있다.

무너진 오랜 소망에 대한
상실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초라한 나의 모습과
그리고 마주한 현실.

슬픔이 거센 파도 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 또한 성숙이거니 생각하며,
아픈 마음을 달래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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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조탁복박(雕琢復朴)  (2) 2022.12.29

공간은 함께할 순 없지만,
시간은 함께할 수 있잖아.
그게 과거라고 슬퍼하지 마렴.
지나갔기 때문에,
지금에 구애없이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잖아.


우리의 기억 안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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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조탁복박(雕琢復朴)  (2) 2022.12.29

머리론 알았지만.
가슴이 인정하기엔
지지리도 
오랜시간이 걸렸다.

사실이 그렇다는 걸.
그럴 수 있다는 걸.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아무런 인기척 없이,
어느새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져버린 유리가 아닌
마치 
하룻밤 유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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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조탁복박(雕琢復朴)  (2) 2022.12.29

조탁복박(雕琢復朴)

雕(조 / 독수리, 새길), 琢(탁 / [옥]돌을 쪼다, 다듬다, [글]을 다듬다),

復(복 / 회복하다, 돌아가다), 朴(박 / 팽나무, 나무 껍질, 본성, 본질, 순박하다, 소박하다)

'조탁'이란 연장으로 새기거나 깎거나

쪼는 일을 뜻한다.

'조탁복박'이란 장인들이 세공을 할 때,

끌로 새기거나 깔로 깎으며 손질을 하더라도,

결국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듯한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말한다.

호자와 열자 이야기는 내용이 길고,

또 필자가 적절하게 요약하고 정리할 수준이

되지 못하여 이 글에 적지 못하였으나

조탁복박에 대한 고사를 자세하게 이해하고

싶은 이는 호자와 열자 이야기를 참고한 후

본 글을 읽으면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장자는 이 '조탁복박' 고사를 통해

그가 말하는 진정한 진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진인은 많은 수양을 쌓아야 하지만

결국은 순박한 모습, 원래의 모습 그 자체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글씨를 잘 쓰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연습을 해야하지만

진정 연습 만으로는 글씨를 아름답게 쓸 수 없다.

수려하고 화려한 글씨를 쓰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서툰 듯하면서도 예스러운 멋을 알아야 정녕으로

글씨를 아름답게 쓸 수 있다.

문장도 마찬가지이다.

화려한 글을 쓰는 동안에는

결국 참다운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범하면서도 꾸밈없는 경지에 이르어야

비로소 명문장가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수양을 쌓고 공부를 해야한다.

하지만 끝에 가서는 학문에 얽매이지 않고 수양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

크게 공감되는 문장이다.

비록 세상의 인정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삶에 이를 수 있다는 장자의 생각을

온전하게 실천하지 못한 필자이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들 마음 속의 깊은 곳에는

다른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같은 마음이 우리가 적극적으로

능력신장을 하도록 이끈다.

다른사람들과 차별성을 기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정을 받기 위해 스스로 노력한 행위가

역으로 인정은 커녕 다른사람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오곤 한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현상으로는 다른사람들이 자신의 권위와 명예를 인정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마음 속 한켠에 존재하는 그들의 진심에서는 정녕 그것이 참인지는 모르겠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차별성'이 만들어내는 '불평등에 대한 불안감'이 그러한 시기와 질투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여튼,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장자가 말한 '조탁복박'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능력을 드러내고 뽐내는 수준에서 나아가

겸손하고 소박한 자세로 자기가 가진 능력을 조심스럽게 펼칠 때,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베풀 때,

시기와 질투가 아닌 진정한 인정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 '진정성 있는 인정'이

우리가 정말 처음에 바랬던 '그것'이 아니였을까?

문득, 장자를 읽다 생각난 이야기이다.

 

< 모로하시 데쓰지, 옮긴이 조성진 , 장자이야기, 사회평론, 2005, p.185-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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